건축

[스크랩] 경희궁(慶熙宮)

김프로님 2007. 2. 25. 20:28

사적 271호로 지정된 경희궁은 조선후기의 이궁이었다. 1617년(광해군 9)부터 짓기 시작하여 1623년(광해군 15)에 완성되었다. 경희궁이 들어서기 전 이곳에는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집이 있었는데, 이곳에 왕기가 서려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그 터를 몰수하고 왕궁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경희궁의 처음 명칭은 경덕궁(慶德宮)이었으나 원종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같은 발음이라 하여 1760년(영조 36) 경희궁으로 바뀌었다.


경희궁은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하여 동궐(東闕)이라고 불렀던 것과 대비되는 별칭이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탄 후 대원군이 중건하기 전까지는 동궐인 창덕궁과 창경궁이 법궁이 되었고, 서궐인 이곳 경희궁이 이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경희궁에는 정전인 숭정전을 비롯하여 편전인 자정전, 침전인 융복전, 회상전 등 100여 동의 크고 작은 건물이 있었다. 그러나 대원군이 경복궁이 중건하면서 경희궁에 있던 건물의 상당수를 옮겨갔으며, 특히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점하면서 경희궁은 본격적인 수난을 맞이하였다. 1910년 일본인을 위한 학교인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숭정전 등 경희궁에 남아있던 중요한 전각들이 대부분 헐려 나갔고, 그 면적도 절반 정도로 축소되었다. 이로 인하여 경희궁은 궁궐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정조 때 만들어진 〈경희궁지 慶熙宮志〉에 경희궁의 규모와 건물의 배치가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궁성의 둘레는 총길이 1,100보(步)로 6,600자였으며 사방에 5개의 문을 두었다. 동쪽에 정문인 흥화문(興化門)과 왼쪽에 흥원문(興元門), 남문 개양문(開陽門), 서문 숭의문(崇義門), 북문 무덕문(武德門)이다.


정전인 숭정전은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으로 궁성의 서쪽에 위치했으며, 주위는 회랑으로 둘러져 있었다. 뒤쪽에는 업무를 보던 자정전(資政殿)이 있었는데 이곳도 행각으로 둘러졌다. 숭정전의 동쪽에는 정침(正寢)인 융복전이, 바로 서쪽에는 왕후의 침전인 회상전이 있었다. 회상전의 담은 5개의 문으로 둘러졌었고, 주위에 많은 건물들이 있었다. 또 융복전 동쪽에는 임금의 어머니인 대비가 생활하던 곳인 장락전(長樂殿)이 있었다. 이들 침전 뒤쪽에는 많은 정자들이 있는 후원이 자리했다.


서울시에서는 1987년부터 경희궁지에 대한 발굴을 거쳐 숭정전 등 정전지역을 복원하여 2002년부터 시민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흥화문

경희궁의 정문으로 원래는 현재 구세군회관 옆에 위치하였으며, 종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1915년 도로확장 때 부근 남쪽으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에는 이등박문의 사당인 박문사(博文寺)에 매각되어 그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위치에 있는 것은 1985년 복원한 것이다.




금촌교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이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이다. 1619년(광해군 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서울시에서는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숭정문

경희궁의 법전인 숭정전의 정문이다. 산세를 따라 조성된 궁이라서 법전으로 들어서기 위해 문으로 오르는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따라서 문을 바라보는 위치가 낮아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새로 조성된 곳이라 옛스런 느낌을 갖을 수는 없지만 궁궐을 들어서 법전, 편전에 이르기까지 경사가 많은 높은 곳을 바라보는 경건함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숭정전

숭정전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이다. 숭전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년(광해군 10)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인 조계사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다. 우물천정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겨두었다.




자정전

자정전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1617~20년(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가 훼손하였다. 서울시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자리에 <서궐도안>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었기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하였다.




태령전

태령전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년(영조 20)에 이 곳을 중수하여 어진을 봉안하였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울시에서는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출처 : 통나무교실
글쓴이 : 통나무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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